벳푸 온천 이니셔티브 — 벳푸 시장 나가노 야스히로의 도전

벳푸(別府)의 한 버스 터미널에 앉아 유후인(由布院)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터미널 안에 설치된 디스플레이에서 영상이 나왔다. 소리 없이 자막만 봤다. 일본어가 짧아 자막 내용을 100% 읽을 수 없었지만, 누가 봐도 벳푸시 관관 홍보/안내 영상이었다. (YouTube에서 보기)

그런데 그 영상의 문법이 조금 달랐다. 고퀄리티 영상에 엉뚱한 유머가 섞여 있었다. 작은 가게들을 소개하는데 직원들이 투닥거리며 싸운다거나 전통의 숙박시설을 소개하면서 직원들이 일렬로 서서 차례로 원형을 그리는 군무를 춘다거나.

‘대체 이게 뭐지?’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보는데, 위 사진 속 정중앙에 서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2015년 벳푸시 역대 최연소 시장이 된 나가노 야스히로(長野恭紘)라고 한다. 올해 4월, 벳푸시 최초 무투표 당선으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이어지는 영상은 ⟨別府温泉の恩返し⟩(벳푸 온천의 은혜 갚기)라는 타이틀의 전국적 캠페인 영상. (YouTube에서 보기)

⟨別府温泉の恩返し⟩(벳푸 온천의 은혜 갚기)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 구마모토현과 오이타현으로 전국적인 원조가 있었고, 그때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전국 어디든 벳푸의 온천수를 무료로 배달한다는 내용이다. 전국에서 2,800건 이상 응모를 받았고 실제로 약 90톤의 벳푸 온천수를 배달했다.

내가 본 것은 이 캠페인을 갈무리한 내용인데, 온천수를 실은 차량이 일본 열도 곳곳을 누비는 장정은 정말 볼만했다. 호스나 수통을 이용해 직접 욕조에 온천수를 부어주고, 욕실 출입구에 미니 사이즈 노렌(のれん)까지 걸어주는 퍼포먼스. 감동적인 사연의 응모가 등장하고, 사연의 주인공이 갓(?) 배달된 따끈한 벳푸 온천수에 몸을 담그며 “아. 역시, 벳푸 온천수가 최고네요.” 하는 멘트와 노곤한 표정까지 알뜰하게 담았다.

스토리와 컨셉을 매끄럽게 연결한 훌륭한 캠페인이라고 생각했다. 2016년 지진에 대한 원조에 보답한다는 메세지를 내세우면서 온천의 도시는 역시 벳푸라는 포지셔닝을 놓치지 않았다. 일본인의 생활문화 중 하나인 탕 목욕문화와 결부된 재밌는 퍼포먼스로 전국적인 이슈를 만들었다. 일반 가정 뿐만 아니라 요양시설까지 찾아다니며 온천수를 공급하는 장면은 잔잔한 감동까지 선사한다.

다음 이어진 영상은 ‘온천을 테마로 한 놀이공원, spa + amusement park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라는 무제한적 상상력이 돋보인 컨셉 영상이었다. (YouTube에서 보기)

2016년 11월, 나가노 야스히로 시장은 이 영상을 공개하면서, 100만뷰를 넘길 경우 이 프로젝트를 현실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영상 공개 4일 만에 120만뷰를 돌파했고, 현재는 569만뷰를 달성 중이다.

처음부터 실행을 예정에 둔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이듬해인 2017년 7월, 벳푸의 불바다(火の海) 축제 기간에 3일 동안 짧게 오픈하는 방식으로 약속을 지켰다. 이 캠페인은 비록 단신일지언정 ‘지구촌 화제’로 다루어지며 우리나라에서도 기사화되었다.

최근엔 어떤 캠페인이 진행 중일지 궁금했다. 나가노 야스히로 시장은 젊은(?) 시장 답게 Facebook 같은 소셜 미디어 활동도 적극적이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나가노 야스히로 시장의 Facebook)

2019 럭비 월드컵 경기 —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라고 하지만 럭비가 비인기 종목인 한국에서는 대회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 가 오이타현에서 치뤄지는 이슈를 받아 대나무로 된 목욕 바구니를 럭비공처럼 운반하며 럭비 룰을 설명하는 영상이 공개되어 있었다. (YouTube에서 보기)

벳푸시는 규슈 동북쪽 오이타현에 있는 인구 13만 명 규모의 도시로 관광 수입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한다. ‘온천’ 하나로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모았지만, 어딘가 한물 간 느낌이 있었다. 나부터도 벳푸하면 오래된 여행책자의 빛바랜 사진들을 떠올렸고,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도 ‘벳푸에 이렇게 일찍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라고 생각했다.

벳푸시가 효도 관광의 명소라는 이미지를 깨고 전세계 젊은 여행객들에게 매력을 어필 할 수 있을까. 주간조선 기사에 의하면, 나가노 야스히로 시장은 “관광객 유치보다 벳푸의 팬을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이런 젊은 리더십의 도전을 보면 가슴이 뛴다. 기대가 된다.

비즈니스 아이디어 공모전 심사 후기

모 비즈니스 아이디어 공모전 심사위원이 되어 서류심사, 발표심사를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문제설정의 중요성

어디까지나 ‘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이므로 ‘문제설정’이 가장 중요하다. 대학생 팀들 중 대학생 특유의 관심사, 20대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문제설정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주 참신했다.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문제라서 그런지 발표에 자신감이 느껴지도 했다. 이렇게 문제설정이 참신하면 ‘문제해결’ 부분이 약해도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배경 설명은 간략히

특정 산업에 대한 비즈니스 아이디어 공모전이라서 그랬는지, 해당 산업의 배경에 대한 설명을 슬라이드 몇 장씩을 써가며 장황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체 설문조사, FGI를 거친 내용들이라고 해도 기존에 보도되거나 발표된 자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각 금융사 및 금융기관 현업 실무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에게 이런 배경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만약 해당 산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이 심사위원이었다면 얘기가 달랐겠다. 그러니 사전에 어떤 사람들이 심사위원들로 오는지 정도는 파악해두어야 한다. 게다가 서론에서 너무 힘을 뺀 탓인지 문제설정, 문제해결을 매우 대충 해놓은 경우도 있었다. 정작 힘을 주어야 할 곳은 그 부분인데 말이다.

역시, 핵심은 문제해결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아이디어 공모전이므로, 자신들의 설정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핵심이 있다. 결국 ‘어떻게’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발표시간은 총 5분이었으므로, 가능하다면 3~4분을 여기에 할애해야 맞다. 그런데 앞에서 썼듯이 서론에 너무 힘을 주는 경우가 많았고 하물며 그렇게 장황한 서론이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배경 리서치는 열심히 해놓고 막상 문제해결에 필요한 기술이나 제도에 관한 리서치는 부실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문제해결의 내용이 매우 복잡하여 대강 들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복잡한 서비스가 매력이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복잡한 구조가 정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을까. 아무리 아이디어 공모전이라고 하지만 실현가능성을 전혀 생각지 않은 듯한 내용도 있었다. 최소한 현재 단계의 기술 발전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한계점은 무엇인지 등은 언급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기대효과는 깔끔하게

마지막으로 매우 거창한 기대효과를 늘어놓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모양 좋은 단어들에 현혹되는 사람이 많지 않을텐데 너무 동떨어진 얘기를 해서 갑자기 현실감각이 싹 달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발표 전체가 허황된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고 잘 쌓아온 점수를 끝에 가서 날려먹는 꼴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문제설정이 너무 거창해서 기대효과도 거창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기대효과는 가급적 구체적으로 이왕이면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좋겠고, 그게 아니라면 정말 정합적인 내용들만 간추려서 넣는 편이 깔끔한 마무리라고 생각된다.

끝으로

문제설정이 참신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리서치와 고민을 많이 한 팀들은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러 심사위원들의 아무런 사전 논의를 거치지 아니하였음에도 평가 의견이 거의 동일하였다.

스마일게이트 오렌지팜 리뷰 데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계산기 두드리지 않은 포석이 어디 있겠냐만은, 성공한 창업자들이 투자, 육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후배 창업자들을 지원함으로써 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분명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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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팜 서초센터 (촬영: 박세희)

이런 맥락에서 오늘 다녀온 스마일게이트 오렌지팜의 리뷰 데이 행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로 게임, 넓게는 컨텐츠 분야에서 제품을 만들고 고치고 다듬고 팔 궁리까지 치열하게 하는 발표자들을 보면서 이 영역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 인생을 걸었다 할 정도의 결기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위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개발 및 사업에 관하여 진지하게 코멘트를 해주던 창업자는 그 자신도 “실패하는 날 전날까지 실패할지 모르고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로 후배 창업자들을 응원했다.

처음 듣는 게임 관련 용어들을 검색해가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알파.

미키 김 Google 디렉터의 “실리콘밸리의 일하는 문화” 특강 정리

김현유(Mickey Kim) Google 디렉터의 “실리콘밸리의 일하는 문화” 특강을 들었다. 드림플러스63 입주사 센트비(Sentbe)가 준비한 사내 행사(일명 Sentbe TED)였다.

특강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

  • 미팅은 정해진 시간에, schedule-based work process
    • 팀 미팅, 1 on 1 미팅 모두 정해진 시간에 진행
    • 미팅 희망시, 빈 slot에 참가인원 invite 하여 arrange
    • 자료 준비 등 집중하고 싶은 시간대도 본인이 설정
    • 위 업무 일정은 팀원들 모두 스케쥴러로 공유 (google calendar)
    • 일정 예측 가능, 하고 있는 일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문화
    • 출퇴근 시간, 업무 장소의 유연화로 Work-Life Balance 달성됨
  • 성과평가는 Career Development에 도움이 되도록, 냉정하게
    • 분기마다 OKR(Objective & Key Result) 직접 작성
    • 2분기마다 주로 가까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평가 실시
    • 평가는 크게 3분야 “한 일, 잘 하고 있는 일, 더 잘 해야 할 일”
    • 실명 평가이고, 평가 작성에 시간을 많이 들임
    • 자기 직급(Lv.)을 넘어서는 성과를 내야만 승진이 가능
    • 성과평가 과정이 피평가자의 Career Development에 도움이 됨
  • Management Communication은 자주, 공개적으로
    • 회사 정책, 방향 설명하는 타운 홀 미팅을 자주 개최함
    • 타운 홀 미팅 전부터 내부 시스템으로 질문을 취합하고,
    • 인기 있는 질문일수록 상위로 올라가서 답변을 주는 시스템
    • 직원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ownership을 갖게 됨
    • 불필요한 웅성거림을 줄이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줌
  • Q&A
    • Google은 검색 → Mobile First → AI First 추진 중
    • 업무에 있어서 over-communication은 매우 중요

열정에서 성숙으로

Y모 강사의 친족•상속법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 내용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세바시 강연을 듣고 나서 해줬던 열정, 권태, 성숙에 관한 이야기. 찾아보니 김창옥 교수가 했던 강연이다.

강연의 요지는, 인간이 품은 ‘열정’은 짧든 길든 일정 시간이 흐르면 ‘권태’(또는 정체기)를 만나 사그라들게 되며, 권태가 ‘성숙’으로 고양될 것인지 아니면 ‘우울’로 빠져들 것인지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가졌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러니, 이 권태는 반드시 끝이 난다, 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견뎌낸다면 성숙에 이를 수 있다.

외계소년 위제트를 닮아 어딘가 친근한 알리바바의 마윈은 “오늘은 힘들고 내일은 더 힘들 수도 있지만 모레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일 저녁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모레의 빛나는 태양을 보지 못한다.”라는 곱씹을수록 묘한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오늘 힘들지 않고서는, 오늘 하루만 힘든 정도로는 모레의 태양을 볼 수 없다는 아주 냉정하고 현실적인 조언이면서, 어쨌거나 고진감래의 낙관을 가지고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따뜻한 격려이기도 하다. 설령 모레까지 힘들면 내일 모레를 기대하면서…, 힘겨운 시간은 그렇게 버텨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