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검찰개혁 화이팅이다

어제 보라매공원에서 나오는 길. 바닥 구멍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기에 살짝 들여다봤다. 아래가 텅 비어있었다. 순간 공포가 등을 훑고 갔다. 얇은 철판과 몇 개의 뼈대가 엉켜서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 눈 앞의 것들에만 관심을 두며 살다가 어제 저녁 서초동 집회 현장 사진을 보고 정말 화들짝 놀랐다. 그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했다. ‘검찰개혁’이라는 의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그보다 훨씬 중하고 급한 과제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집회 인원을 두고 설왕설래 하는 글을 봤다. “마, 이게 민심이다!” vs. “ㅉㅉ, 인원이 부풀려졌다!” 패싸움 할 것도 아니고 사람 수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집회에는 ‘의제 설정’이라는 기능도 있으니까 이해한다. 이 사태가 쉽게 마무리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적당 사람 수를 잡는 방식으로라도 어림셈을 해서 ‘추산’이 되었다면, 그 숫자를 깎아내리면서 집회의 위상을 공격하는 건 무용한 일인 것 같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검찰개혁을 부르짖든, 정권 핵심인사 또는 정권 그 자체를 지키려 하든 간에, 아무튼 굉장히 많은 인원인 건 사실이다.

“OO을 개혁하자!”라는 외침에, “아니, 나는 OO개혁을 반대한다!”라고 받아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혁’은 이미 하나의 프레임이다. 다만, 어느 누구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그게 쏙 빠져 있어서 자꾸 불안하다.

지난 정권들의 검찰개혁사를 정리한 어느 글을 보았다. 아차, 싶었다. 노무현 정권의 첫 법무부장관은 무려 강금실 변호사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보다 좋은 법무부장관 후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역량면이나 상징면에서 적임자였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의 인사권 행사에 반발한 검찰은, 검찰총장이 직접 건의문을 날리고, 집단반발까지 했다. 결국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라는 초유의 이벤트가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때 강공으로 나가서 사직 원하는 검사 다 내보내고 법원이나 재야에서 경력 검사를 대거 임용하는 수를 뒀더라면 검찰은 인적 쇄신을 한 번은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근래 한국 정치사를 일종의 ‘복수극’으로 써내려가는 시나리오에 의하면, 검찰은 절대악이자 보수세력의 충견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런 서사가 여전히 매력적으로 소구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견이지만, 검찰 역시 ‘공무원조직’일 뿐이다. 검찰 내 극소수 또는 일부 ‘정치 검사’가 정치권과 결탁해 음험한 짓거리를 할 수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모든 조직이 비슷하다. 하물며 사기업에도 그런 ‘정치꾼’들이 있다.

이런 건 거창한 검찰개혁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조직문화 개선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지금의 기수제 상명하복 문화만 사라져도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것이다. 위에서 아무리 엄한 지시를 해도 바로 치받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의정부/대전 법조 비리 사건, 그랜저/벤츠/제네시스 검사 같은 사건도 자주 언급된다. 내가 보기엔 여타 공무원 비리, 부정부패 사건과 다를 게 없다. 좀 더 엄히 처벌되어야 하는 점만 다르다.

‘제 식구 감싸기’ 같은 것도 검찰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리 검찰이라도 명백한 잘못이 있는데도 이를 처벌되지 않도록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검찰옹호론자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개혁 지지파이다. 검찰 조직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검찰 권력이 견제 받지 못해서 너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공수처를 설치하자고 한다. 그런데, 공수처는 누가 견제할 것인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여 검찰 권력을 축소시키자고 한다.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방안은 좋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경찰은 누가 견제할 것인가?

미국의 예가 자꾸 언급되는데, 미국은 경찰이 힘이 세다. 그러다 보니 ‘미란다원칙’ 같은 게 만들어진 것이다. 경찰이 위법수사하지 말라고. 위법수사해서 얻은 증거는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증거법 원칙도 생겨났다.

압수수색이 과했다고 한다. 그런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압수수색의 영장은 법원에서 발부해 준 것이다.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많이 해서 재판에 가서 무죄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의 무죄율은 극히 낮은 편이다.

모든 제도는 역사적 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무조건 옳다거나 한 번 만들어지면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미국/독일/일본 사례를 예로 들면서 비교법적으로만 접근하는 게 타당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검찰개혁 화이팅이다. 나는 체지방개혁을 하기 위해 오늘 밤에도 달리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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