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2017) 봤다

“영국의 보물” 엠마 톰슨이 판사 ‘피오나 메이’로 등장한다. 까다로운 사건들로 인해 연일 정신이 없는데,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년을 함께 산 남편 ‘잭’은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갑작스런 외도 선언 및 가출(?)을 한다.

판사 ‘메이’는 약하다는 이유로 드라마의 소재가 될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남편이 떠나도 여전히 바쁜 업무를 소화하고, 취미인 피아노 연주를 계속 하고, 곧 있을 연주회 준비도 해낸다. 일상을 견고하게 이어간다.

그 와중에 찾아온 ‘여호와의 증인’ 소년의 수혈 거부 사건. 수혈 명령을 신청한 병원 측과 이를 거부하는 소년의 보호자가 법정에 섰다. 역시 ‘여호와의 증인’ 부모는 “수혈 거부는 (몇 달 뒤면 성년이 되는) 아들 본인의 완강한 의지”라며 버틴다.

판사 ‘메이’는 현장 검증을 위해 직접 병원으로 간다. 예외적인 일이었다. 병상에 누운 파리한 얼굴의 소년 ‘아담 헨리’와 대화를 나눈다. 이 짧고 강렬한 대화가 소년의 삶을 뒤흔든다. 그 여진은 이제 판사 ‘메이’에게도 영향을 미치려 한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나 여전히 방황하는 소년인 ‘아담 헨리’는 판사 ‘메이’와의 대화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이 대화가 있기 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알껍데기가 깨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소년 ‘헨리’는 자신이 알껍데기를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판사 ‘메이’를 마치 어미새를 본 마냥 따르려 한다. ‘메이’는 자신의 판결과 함께 사건이 종료되었고, 자신이 ‘헨리’의 삶에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도 매우 차분하고 침착하게, 때론 냉정하게 대응한다.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곧 그 삶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무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에 절대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그 아이들을 평생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영화를 보고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판사 ‘메이’의 대응이 지극히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이 영화를 보기로 한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어느 한 쪽을 이상한 사람들로 그리지 않는 균형 있고 우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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