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아동을 존중하는가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였다. 지금보다 어렸던 총총이를 아기의자에 앉히고 저녁을 먹었다. 바로 옆자리에는 (우리보다는) 젊은 커플이 앉았다. 그들은 우리를 무척 안쓰럽게 바라봤다. 나처럼 무심한 사람도 알아차릴 정도로 강한 시선이었다. 좋게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건 ‘경멸’이었다. 그때, 어떤 사람은 눈으로도 모욕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많이 소란스러웠던가.’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푸드코트는 원래가 소란스러운 장소였다. 자리를 잡으려 여기저기를 빠르게 돌아다니는 사람, 주문대에 서서 음식을 고르는 사람, 서로의 주문을 확인하느라 소리 높여 말을 주고 받는 사람, 다 먹고 트레이를 들고 나가는 사람이 모두 섞여서 난리였고, 그 난리 속에서도 꿋꿋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 중 하나였다. 억울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 아내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위로했다.

KTX를 타고 대구에서 서울로 올 때였다. 유아동반실 좌석을 구하고 싶었지만 없었다. 결국 특실을 탔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조용한 분위기를 깰까봐 특실은 피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아내와 총총이가 나란히 앉고, 나는 통로를 두고 옆에 떨어져 앉았다.

그런데, 아내와 총총이 앞에 앉은 한 젊은 남자가 계속 뭐라고 말을 했다.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가 나에게 말하길, “어린 OO가, OO 시끄럽네.”라는 말을 했단다. 화가 불끈 났다.

변명처럼 보이겠지만, 이제 말을 시작하는 총총이는 더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이유없이 떼를 쓰며 울지도 않는다. 다만, 쫑알쫑알 말이 많다. 몇 번 주의를 줘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만다. 아이의 입을 틀어막지 않는 이상 달리 제지할 방법이 없다. 유튜브를 틀어주면 넋을 놓고 보겠지만 그것도 1시간 이상 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 서울역을 나오면서 아내는 몹시 속상해했다.

정소연 변호사님이 쓴 칼럼 “우리 사회는 아동을 존중하는가”(동아일보)를 읽고 위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이 글을 아내가 읽는다면, 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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