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마리에,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읽고, 아내의 오랜 숙원이자 내 마음의 짐이었던 ‘서재 정리’(라고 쓰고 ‘책 내다 버리기’)를 실행했다.

1차로 처분할 책을 추렸는데 무려 105권이 나왔다. (촬영: 박세희)

이 좁은 서재, 좁은 책장 속에 얼마나 많은 책이 숨어 들어 있었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가볍게 1차로 처분할 책을 추렸는데 무려 105권이 나왔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곤마리’의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나 역시 이 정도로 그칠 생각은 없고 최소 이만큼은 더 처분할 계획이다.

서재 정리를 하면 늘 느끼는 사실: 세상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중고서점에서 사주는 책, 그렇지 않은 책. 언젠가 읽겠거니 하고 보관하는 것보다는, 팔 수 있을 때 팔아버리는 게 낫다. 왜냐하면, “‘언젠가 읽어야지’의 그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기 때문이다.”(곤도 마리에)

책을 추려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최근 내가 재밌게 읽었거나 일/업무에 참고한 책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빌린 신간 또는 전자책으로 사서 읽었던 책들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이 무엇을 말하느냐. 나는 책을 사서 집에 들이는 순간 ‘나의 책’이라는 인식 하에 도무지 그 책을 펼쳐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빌린 책 또는 전자책을 읽느라 책장으로 들어간 책들은 꺼내들 시간이 도무지 없었다는 뜻이다.

학부 때부터 친했고,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다시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친구가 있다. 그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 미국으로 가야하는데, 방에 있는 책을 다 가져갈 수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추리고 추리다보니 수학책 세 권만 딱 남더라. 난 이 세 권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너는 어때?” 그의 말을 듣고 방에 돌아와 책장을 돌아보았으나, 나는 결국 그 모든 책들을 버리지 못했었다. 이번 책장 정리에서 그때 그 친구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곤도 마리에의 책이 좋았던 건 정리 또는 수납에 대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그만의 특별한 비법/기술을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건 없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왜 우리가 직관적 기준(설레는가?)에 따른 정리(=버리기)를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라는 표현이 단순 과장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버리는(남기는) 훈련을 반복한다면, 물건 뿐만 아니고 사람 또는 일에 있어서도 그런 감각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도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서도 직관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그게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마치 그 많은 책들 중 수학책 단 세 권만을 남기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던 방향을 따라 과감하게 미국행을 택했던 나의 오랜 친구의 그 결단처럼 말이다.

‘머무름 없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하면서, 유독 책과의 ‘연’(緣)에는 ‘착’(着)이 있었다. 그 ‘착’(着)은 나를 키우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과 정신을 과거에 머무르게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 이 책들과의 ‘연’(緣)은 이제 놓을 때가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홀가분하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pas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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