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진행했던 연정 멘토링, 줄여서 연토링 행사 기획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생각난 김에 남긴다.

발단

작년 여름. 업무에 참고할 목적으로 학부 후배들이 속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간단한 설문을 하나 띄웠다. 요즘 대학생・청년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지 묻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응답을 해 준 후배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따로 연락을 해서 이것저것 더 물어보기도 했다.

다들 졸업 후 뭐 먹고살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다. ‘이봐요, 후배님들. 그 고민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도 계속하게 될 질문이에요.’라고 생각하면서도, 로스쿨, 국립외교원, 5급 공무원 공채 이외의 커리어에 대하여는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맞아. 나도 그때는 답답하고 막막했지.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대학을 졸업해도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 다수가 가는 길을 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겉으로는 자기 길을 찾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이 많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지.’

때마침 어느 교육기관의 면접 질문을 접했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본인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이 질문을 읽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바빴던 내가 정작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나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대한민국 정도의 스케일은 아니지만, 학과 후배들이 직면한 문제인 졸업 후 진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내 삶에서 가정(제1), 밥벌이로서의 일(제2) 이외의 제3의 무언가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핑계 대지 말고, 미루지 말고, 당장 실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학생이면 성인이니까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하겠거니 싶으면서도, 그동안 선배들로부터 밥이며 술이며 얻어먹으면서 차곡차곡 적립해 온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후배들에게 대신) 갚는다는 생각으로, 깜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오지랖 한 번 부려보기로 하고, 두서없는 기획안을 주절주절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획

‘동문 초청행사’라고 하면, 이삼십 년 차이 나는 대선배님들이 상전벽해라 할 새 캠퍼스를 구경하신 다음, “우리 때는 백양로에 얕은 내가 흘렀어요.”와 같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로 시작하여 “…어쨌거나 미래는 여러분의 것이니 큰 꿈을 품고 세계로 나가라.”는 말로 끝나는, 그런 그림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대단한 성공과는 아직, 어쩌면 영영 거리가 멀지만, 지금 재학생들과 나이/학번 차이가 크지 않은 졸업 선배들이 요즘 시대에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구직과정에서 그 높던 나의 콧대가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졌는지, 직장생활은 또 얼마나 힘든지, 막상 취업은 했지만 앞길은 왜 이리도 막막한지 등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되면 안 되는 것인가.

기획서 중 일부

다행히도 내 주변에 이런 기획 의도에 공감하는 동문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만 해도 약 20명 정도가 되었으며, 그들이 진출해 있는 분야도 꽤 다양했다. 이 정도 구성이면 당장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널리 수소문을 할 여력이 없기도 했다.

일단 스피커를 찾았으니, 다음으로 당시 과 학생회장(현재는 군인…) 심재용 후배를 만나서 2017년 가을학기에 이런 행사를 해보면 어떨지 물어보았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고맙게도 스피커 섭외 이외의 나머지 일(장소 섭외, 행사 홍보/진행)을 학생회에서 맡아주기로 했다. (김수나 후배를 비롯한 학생회 후배님들 고맙습니다.) 심재용 후배와 종로에서 쌀국수를 먹으면서,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1명이라도 온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취소 없이 행사를 진행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실행

그렇게 해서 11명의 선배들 —

  • 고시 공부에 손을 댔다가 아,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깨닫고 타이어 회사에 입사하여 해외로 타이어를 팔고 있는 김재우
  •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더니 결국 영상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이주호
  • 간절한 노력 끝에 방송기자가 되어 방송기자상을 두 차례 연속 수상한 이윤녕
  •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지혜
  • 시민단체 활동 경험이 있고 법무법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연수
  • 국제아동구호 NGO에서 일하며 놀이터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제충만
  • 독립잡지를 창간했고 당시 벤처기부펀드에서 일하고 있었던 정지원
  • 취리히로 교환학생을 갔다가 개발에 입문하여 지금은 스마트폰 음성 인식 플랫폼 관련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윤채원
  • 언론 쪽 일을 하고 싶었다가 지금은 IT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김아름
  • 광고기획자로 일하다가 원부술집, 모어댄위스키, 하루키술집 등 음주문화공간을 기획/운영하는 원부연
  • 오랜 수험기간을 버텨내고 끝내 꿈을 이룬 김근우

— 이 별다른 대가 없이 오로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라는 그 기꺼운 마음 하나로 바쁜 일정을 쪼개어 연희관을 찾아주었다. 총 4회의 연정 멘토링, 줄여서 “연토링”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이외에 별다른 대가를 마련하지 못한 부분은 지금도 너무나 미안하다. (많이 늦었지만, 제가 밥은 꼭 사겠습니다.) 시작(제1회)과 끝(제4회) 말고 제2회, 제3회 행사는 내가 직접 참석하지도 못했다. (종일 혼자 아이를 돌보며 내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몰라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당시 학과장이셨던 황태희 교수님께서 고생하는 학생회 후배들을 격려하는 식사 자리도 마련해주셨고, 마지막 행사 뒤풀이 때는 신재완 선배님께서 친히 와주셔서 격려를 해주시기도 했다. 그마저도 일정이 바빴던 저 11명의 동문들은 거의 참석을 못해서 아쉬웠다.

추가로, 학생회 후배들의 웹자보(?) 만드는 실력이 출중해서 놀랐다. 게다가 행사 이후 내용을 요약한 카드뉴스, 참가자들의 행사 후기를 담은 카드뉴스를 만들어서 학생회 계정을 통해 홍보를 하기도 했다. 싸이월드 클럽에 공지사항 하나 올림으로써 모든 홍보를 마쳤던 우리 때와는 참 달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9월. 당시 이 행사에 참여했던, 5급 공무원 공채를 준비하고 있다던 한 후배가 최근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 당시에는 수험생활을 계속 이어갈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했고, 나도 그 뒤로는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기대하지 못한 반가운 소식이었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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