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바다, 하늘에서의 각기 다른 시간들이 교차로 배치되고 합쳐지는 복잡한 플롯. 끊길 듯 변주되며 감정선을 장악하는 사운드. 이 둘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

‘전쟁영화’의 클리셰라 할 총포탄이 빗발치는 전투 장면은 없다.

그러나, 가까스로 올라탄 구축함으로 빨려오는 한 발의 어뢰. 간신히 숨어든 어선의 밑창을 뚫는 몇 발의 총알. 저 멀리서 호위기를 이끌고 유유히 다가오는 한 대의 폭격기. 적들의 존재만큼이나 압박감을 주었던 물과 불.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려는 절박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압도적이다.

땅에서의 한 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

우주 물리의 절대 시간은 고고히 흐르고 있을지 모르나, 그 시간을 돌파하는 우리의 속도에 따라 밀도가 달라지고 그리하여 다른 차원이 펼쳐진다는 발상은 가히 천재적이다.

인간 무의식의 층위를 파고드는 ⟨인셉션⟩ (2010)과 우주적 시공간을 소재로 한 ⟨인터스텔라⟩ (2014)를 만들면서 놀란의 솜씨는 더욱 미끈해진 것 같다.

우리가 체감하는 일상의 시간도 그 속도와 밀도에 따라 여러 차원으로 펼쳐지는 것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세워본다.

두 발로 뛰는 보병이든, 배를 타고 파도를 넘는 선장이든, 조종간을 잡은 파일럿이든 그 세 차원을 하나의 화면에 담는 감독의 전망에는 이를 수 없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 인간은 고작 자신의 두 발로 진창을 뛰어다니는 보병의 처지겠지만, 여러 시간과 차원을 입체적으로 주무르는 바로 저 감독의 시선을, 감히 탐내보아야 할 것 같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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