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범죄로 딸을 잃은 한 여성이 미주리주 에빙 외곽 도로 근처 대형 옥외 광고판(빌보드) 세 개의 사용권을 산다. 딸의 사체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이렇게 적는다.

죽어가는 동안 강간을 당했어.
그런데 아직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왈라비 서장?

이 광고문은 딸이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벌써 몇 달이 흘렀음에도 아직 사건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무능한 경찰에 대한 일종의 저격글인 셈이다.

Three Billboards

새 도로가 뚫리고 나서 오가는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외곽도로, 사실상 방치된 광고판에 불과했지만, 소도시 에빙에 가해진 파장은 작지 않았다. 왈라비가 서장으로 있는 에빙 경찰서가 발칵 뒤집힌다. 사체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결정적으로, “우리 서장님, 췌장암 말기 환자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

이 시놉시스가 어떻게 ‘코미디’ 장르라는 것일까. 이건 누가 봐도 스릴러, 범죄물 영화가 아닌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코미디 장르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다. 해학은 없지만, 풍자와 조롱은 가득하다. 무엇에 대하여? 무식하고 무능한 특정 계층에 대하여.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분한 ‘밀드레드 헤이즈’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속으로 삭이기 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응수한다. 그는 이를테면 ‘응보주의자’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불에는 불. 때론 엉뚱한 앙갚음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당하고 있지만 않는다. 항상 턱을 당긴 채로 어떤 위협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당당하고 과감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꼿꼿하게 맞선다.

그렇게 맞서 싸우는 과정이 항상 옳고 좋고 아름다운가. 그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내는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가. 이 모든 질문에 ‘그렇다’라고는 답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분명히 균열을 내기는 한다. 그리고 왈라비 서장의 말처럼 “그건 아주 멋지고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면 이 영화는 세상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당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잘 봤지? 이렇게 싸우는 거야.”하고 ‘싸움의 전략’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그건 또 아닌 것 같은 게, 두 시간 남짓 이 짧은 시간 속에서도 ‘밀드레드 헤이즈’는 변화한다.

변화한 그가 맞이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서는 미처 상상도 못했던 그림이다. 그런데 또 그 그림이 꽤 설득력이 있다. 그들이 겪었던 과정을 따라가면 그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가장 큰 이유였다. 끝맛이 좋다.

그래서, 그는 딸을 죽인 범인을 잡았을까?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