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레셔스⟩ (Precious, 2009) 봤다

할렘의 16세 소녀, 프레셔스

1987년, 할렘의 16세 소녀 프레셔스. ‘귀하다’는 뜻의 그 이름이 역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처참하고 비참하게 살고 있는 이 소녀는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내쫓긴다.

16세에 벌써 두 번째 임신이라니. 흠모하는 남자 선생님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말고는 학교생활에 달리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퇴학 자체가 프레셔스에게 큰 사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집까지 찾아온 교장선생님은 초인종을 여러 번 울려가며 프레셔스에게 꼭 대안학교를 찾아가길 권한다. 프레셔스에게 기대가 있었는지, 작은 호의를 베푼 것이었는지, 동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깟 공부 좀 해서 백인들 흉내내보았자 넌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 거라는 어미의 폭언과 저주를 뒤로하고 프레셔스는 대안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레인 선생님과의 만남

그렇게 만난 레인 선생님. 첫 만남에서 레인 선생님은 프레셔스에게 무엇을 잘 하는지를 묻는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프레셔스는 나는 잘 하는 것이 없다고 답한다.

레인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잘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준다. 레인 선생님 이전에는 누구도 프레셔스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없었다. 그 순간 프레셔스의 눈빛이 달라진다.

사실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제대로 된 읽기, 쓰기 교육도 받지 못했던 프레셔스는 레인 선생님으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더라도 일단은 무엇이든 매일 써보라는 레인 선생님의 주문을 프레셔스는 성실히 따르려 한다.

그러나, 집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하루종일 티브이만 보는 어미는 프레셔스와 프레셔스의 첫째 아이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그 지원금으로 살아간다.

어미는 학교를 다니려는 프레셔스가 못마땅하다. 배워서 무엇하느냐 그래봤자 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니 그냥 정부 지원금이나 받아먹으며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폭언을 일삼는다.

대체 이 어미는 자기가 낳은 딸인 프레셔스를 왜 이다지도 미워하는 것일까. 이유는 있었다. 프레셔스가 자신의 남자를 꼬셔 첫째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까지 가졌다는 것이다.

말은 바로해야지. 프레셔스는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것도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프레셔스의 이런 이야기를 어미는 믿어주지 않는다.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둘째 아이까지 낳은 프레셔스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어미의 폭행이 자신을 넘어 갓난 아이에까지 미치자 결국 집을 나온다. 잠시 레인 선생님 친구 집에 몸을 의탁한다. 레인 선생님과 그 친구는 웃음과 따뜻함으로 프레셔스를 대한다.

프레셔스는 궁금하다. 대체 이들은 왜 이다지도 나에게 친절한 것인가. 프레셔스는 감히 레인 선생님이 통과했을 어두운 긴 터널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그 긴 터널을 돌파할 수 있는 빛을 품었기에 터널을 나와서도 남들에게 그 빛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프레셔스는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맹퇴치상도 받는다. 중학교 검정고시와 비슷한 시험도 통과한다.

레인 선생님 친구의 집을 나와 복지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프레셔스를 찾아온 어미는 프레셔스를 강간했던 아비의 사망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그 아비가 에이즈로 죽었으니 너도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전한다.

결과는 양성. 프레셔스는 오열한다.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 것인지. 이제 프레셔스에게는 희망이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레인 선생님은 프레셔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글을 써.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 있으면 그 고통을 글로 써. 자신을 위해서,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써.

사랑. 선생님, 사랑은 나를 때리고 강간하고 짐승 같은 년이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 그건 사랑이 아니다, 프레셔스. 사랑은 너가 너의 아이에게 주는 것, 너의 아이가 너에게 주는 것, 그리고 내가 너에게 주는 바로 이것이 사랑이란다.

다시 프레셔스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어미의 요청 앞에서 두 아이를 힘겹게 둘러업은 프레셔스는 어미의 솔직한 반성에 고마움을 표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고자 한다.

다시 어디론가, 아마도 미래로, 두 아이와 함께 걸어간다. 그러나, 어디로. 프레셔스는 대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오프라 윈프리

이 영화의 제작으로 참여한 오프라 윈프리. 그는 가난한 흑인 마을에서 18세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다. 9살때는 사촌 오빠나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14살 때 조산아를 낳았고, 그 아이는 2주 만에 죽고 말았다.

기구한 세월을 견뎌내기 어려워 자살도 생각했고 마약이나 담배로 현실을 잊고자 했고 한때는 폭식으로 몸무게가 엄청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레셔스와 많은 점이 비슷하다.

그런데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돈도 잘 버는) TV쇼 진행자이다. 힘겨운 과거를 딛고 성공했기 때문에 오프라 윈프리가 대단한 것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어두운 과거는 오프라 윈프리가 큰 성공을 거둔 뒤에 한 가족에 의하여 ‘폭로’된 것이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진행하는 TV쇼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과거를 밝힘으로써 이를 ‘극복’했다.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프레셔스가 오프라 윈프리처럼 인생 대역전을 이루게 될지, 아니면 영원히 가난한 흑인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폭행에 시달리며 밑바닥 인생을 살게 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누가 감히 프레셔스에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 자신도 레인 선생님을 따라 고통이란 이름의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고자 노력하는 프레셔스에게 조심스럽고 간절한 응원을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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