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실로 대단하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한 편의 잘 쓰여진 소설을 한 페이지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완독해낸 느낌을 받았다. 간간이 이해할 수 없는 메타포 혹은 설명 되지 않은 장치 같은 것만 빼면 크게 흠 잡을 것이 없었다.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을 이상으로 삼는 기차, 철도, 배차시스템은 계획성, 예측가능성, 계산합리성을 핵심으로 하는 ‘근대성’(modernity)의 집약이자 화체(化體)이다.

철도에는 ‘폐쇄계’(closed system)를 가정하고 주어진 변수를 모조리 계산해내면 무엇이든 계획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하는 근대적 이성의 오만함(hubris)이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

조선 땅의 근대가 철도와 함께 시작했다고 쓰는 문화사가들도 있다.

그렇다고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근대+자본주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은유일 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미친 롤러코스터에서 뛰어내려라!”라고 하던 탈주의 주문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지금껏 이 체제에서 탈주한 이들의 모습은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거나 아니면 보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 죽어버렸을 뿐이다.

그런데, 설국열차, 꼬리칸에서 앞칸으로 옮겨진 바이올린 연주자와 어린 아이들은 왜 꼬리칸 사람들이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을까. 과거야 어쨌건 이미 한 시스템의 나사못이 되어 그에 부역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오늘 광화문에서 사람들 사이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만났다. 위험하고 소란스러워서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 아이들의 싱싱함과 푸르름이 희망일 거란 생각을 했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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