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소감문 “나에게 공군은 고향인가 보다”

“박중위님 잘 지내시죠? 부산은 날씨가 참 좋습니다.”, 최 원사로부터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최 원사와는 마지막 근무지인 부산에서 연을 맺었다.

올해 3월에는 내가 전속부관으로서 2년 정도 모셨던 단장님을 뵙고 식사를 했다. 같이 근무했던 행정실장님도 함께였다. 두 분 다 서울로 근무지를 옮기시게 되어 때가 잘 맞았다.

그보다 앞서 올해 2월에는 공군본부에 내려가서 참모차장님을 뵈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 121기 동기들이 정성으로 모은 장학금 500만원을 하늘사랑장학재단(공군 순직 조종사 유가족 장학회)에 전달했다.

전역한지 벌써 15개월, 나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세 번째 학기를 다니는 중이다. 2008년 8월에 떠났던 정든 캠퍼스로 돌아왔다. 바뀐 것은 전공(학부에서는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병역이었다.

새 집단의 신참내기가 되니 나의 과거(?)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왕왕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어디서 무얼하다가 대학원에 왔는가, 하면서 물어온다. 나는 공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고 답한다.

사람들은 의아스런 표정으로 왜 하필이면 사병에 비해서 복무기간이 2배에 달하는 장교를 선택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장교 복무가 사병 복무에 비해 2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답한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공군 학사장교 121기는 2008년 9월 16일에 입영하여, 2009년 1월 1일자로 공군 소위가 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모두 287명이 임관하였다. 대다수의 동기들은 3년간의 의무복무기간을 채우고 2011년 12월 30일자로 전역하였다.

전역신고를 하던 그날의 아침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오랜만에 정복을 차려 입었다. 환희로 가득 찬 동기들의 얼굴을 보며 설렘이 일었다. 단장님께 전역신고를 하고 비행단을 돌며 전역인사를 했다.

다시 사회로…. 마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슴 가득 자신감이 있었다. 4개월간의 훈련기간을 포함 총 40개월의 복무기간을 통해 쌓은 경험이야말로 그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입영에서 임관, 특기교육, 배속, OJT, 첫 브리핑, 전속부관으로 차출, 첫 수행, 첫 출장 그리고 다른 부대로의 전속, 적응 그리고 전역까지. 40개월의 복무기간을 무탈하게 보낸 스스로가 대견했다. 앞으로 내게 닥칠 웬만한 시련은 거뜬히 이겨낼 것만 같았다. 그만큼 맷집이 세졌다.

윗사람을 모시고, 아랫사람을 챙기고, 조직을 위하는 법을 배웠다. 군에서의 인간관계와 조직생활은 대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는 또 다른 배움의 기회였다. 특히 약 2년여의 전속부관 생활은 스스로의 부족한 면에 대하여 성찰하고 고쳐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훌륭한 지휘관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어깨너머로 체득한 것도 많았다.

나라에 대한 충성과 조직에 대한 헌신으로 살아가는 참군인들을 만나면서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군 복무 중에 천안함과 연평도, 김정일 사망을 겪었다. 평화, 통일, 국방, 안보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특히 공군 관련 소식은 늘 귀를 기울일 만큼 공군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 121기 동기를 얻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 탓도 있겠지만, 4개월간의 훈련기간 때에도 임관 후의 복무기간 중에도 우리 동기들은 최고였다. 121기의 교육검열 영상은 장교교육대대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고 한다.

출장지에서 만난 동기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121기의 이름으로 모인 돈을 하늘사랑장학재단에 기부하자고 했을 때도 동기들은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현재도 100명이 넘는 동기들이 페이스북 그룹을 이용하여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고 있다.

故 이정태 중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태는 2010년 5월 7일 체력훈련을 끝내고 심장마비로 순직한 우리 121기 동기이다. 후보생 시절, 그는 행군훈련 도중에 훈육관 성대모사를 익살스럽게 하여 많은 동기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속이 깊고 멋진 친구였다.

그의 사망소식을 듣던 날, 눈부시게 쏟아지던 햇살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빈소에서, 화장터에서, 영결식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부대원들은 장교, 부사관, 병사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그를 좋아했노라고 말하였다. 아쉬운 인재였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바쁘게 살다보니 내가 군인이었다는 사실마저도 종종 잊는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며 살아가니까. 그래서 간간이 만나는 121기 동기들은 내가 공군이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들을 만나면 나는 다시 스물여덟의 그 해로 돌아간다.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왜 공군 장교가 되고자 했고, 결국은 공군 장교가 되었는지를 말이다. 그러면 나는 딱 잘라서 말한다. 다시 기회가 주어져도 공군 장교가 되겠다고. 사람들은 그제야 수긍을 한다.

일이 조금 잘 풀리는 듯 싶고 내가 좀 잘났다 으스대고 싶을 때면 나는 행군 도중 공포탄 탄피를 분실한 탓에 이래저래 민폐를 끼쳤던 때를 떠올린다. 그때를 생각하면 금새 얼굴이 화끈거리고 들떴던 마음이 이내 차분해진다.

절벽에 내몰린 듯 상황이 위태롭고 심신이 지칠 때면 밤새 내 손을 잡아주던 동기의 손을, 나를 변호하기 위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동기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그러고 나면 다시 힘이 솟고 불안은 맑게 걷힌다.

전역한지 15개월, 전역에 대한 소회를 늘어놓기에는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나는 공군을 선택했고, 공군도 나를 선택했다. 공군은 나를 보듬었고 그 속에서 나는 밀도 있는 성장을 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야겠지만, 공군을 생각하면 지난날의 그리움이 소리치며 달려온다. 나에게 공군은 그리운 고향인가 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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