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있다. 그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순전히 우리 아버지 때문 혹은 덕분이다. 반대로 나는 ‘직업 군인’의 고단함과 애환을 가까이서 보았기에 한사코 말렸던 편이다.

아버지께서 사촌동생을 구워 삶기 위한 전략은 실로 굉장했다.

일단 명절과 경조사로 이 동생을 만날 일이 있을 때마다 “공사! 공사”를 연호하셨다. 양손을 이용, 0과 4를 번갈아 내미는 앙증맞은 동작까지 곁들이셨다. 이를 지켜보는 나머지 가족들은 참 힘들었다.

게다가 동생이 청주로 면접을 보러가는 날에는 운전기사까지 자처하셔서 태워가고 태워오고 하셨다. 내가 대학가고 어디가고 뭐 할 때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셨던 분이다.

엄청난 공약들을 남발하셨다. 입학하면 노트북을 바꿔준다, 소위로 임관하면 뭐를 사준다, 뭐를 해준다.

근거가 없는 긍정적 전망을 늘어놓으셨다. 동생을 더러 어깨가 딱 벌어진 것이 어딜 봐도 군인체질이라느니 일단 들어가면 장성 진급은 따놓은 당상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그러실 때마다 나를 비롯 다른 구성원들은 동생이 직접 결정할 사안이지 아버지께서 자꾸 그렇게 부담주면서 강요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누차 말씀드렸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랑곳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끈질김에도 놀랐지만, 동생이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해서 합격했고(!), 지금은 사관생도로 두해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결국 아버지께서 뜻한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내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자, “나는 결국 네가 법조인이 되려고 할 줄 알았다.”(?)라는 기묘한 평을 하셨던 아버지이시다.

아무튼 나도 그래서 나중에 누군가가 “너가 잘 될 거라고 했잖아, 정말로 잘 됐어, 고마워!” 할 수 있게 좋은 말을 많이 할 작정이다. “공! 사! 0! 4!”까지는 아니어도.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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