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이후, 앞다투어 방영했던 회고 영상에서 빠지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감옥이 나의 대학이었다”라고 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 박노해 시인도 8년 동안의 투옥 중에 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관직에 있는 동안에도 정조의 부름으로 경전을 연구하고 또 많은 글을 썼던 다산 정약용이지만, 그의 학문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배지에서 꽃을 피운다. 형 약전과 또 가족과 떨어져 눈물겨운 귀향생활을 했던 다산에게는 야속한 생각이겠지만, 그의 귀향이 후대에게는 선물이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의 산문 선집으로, 목민관, 지식인, 예인, 가장으로서의 다산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다산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기회이다. 편역자가 책 머리에 썼듯, 이 얇은 책 한 권으로 다산의 전부를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장님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이 부분적 경험은 전체로 나아가는 훌륭한 단서가 될 것이다.

멀리 귀향와서 두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다산의 마음은 참으로 애닯다. 형 약전과 자신이 둘 다 귀향을 왔으니, 자식들은 아무리 글 공부를 하더라도 관직에 오를 수 없는 ‘폐족’(廢族)의 처지가 된다. 다산은 글 공부를 게을리 하는 두 아들이 염려되어 폐족의 처지가 된 지금이야 말로 과거 공부에 근심하지 않고 진실한 독서, 참된 공부를 할 기회라고 말한다. 글은 그리 썼으나 자신 때문에 벼슬 길이 막힌 두 아들에게 몹시도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어서, 이 아비는 천지 간에 홀로 서서 오직 글쓰기에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데 자식들이 아비가 쓴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냐, 장차 내 저술은 누가 수습하고 정리하며 바로 잡고 정리하겠느냐고 호통을 친다. 다시금 뜻을 펼쳐 볼 마음도 없진 않았겠지만, 절개를 잃고 비루하게 구걸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두 아들이 이리저리 구명을 해보려고 움직이자 ‘천하의 두 가지 큰 기준’에는 의(義)와 이(利)가 있다며, 이(利)를 좇기 위해 의(義)를 져버릴 순 없다는 말과 함께 단칼에 잘라낸다.

이와 더불어, 이 책의 5장 격인 ‘밥 파는 노파’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 민중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다산이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기록도 기억도 없을 이름들이다. 그에게 글쓰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할 수 있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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