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등, ⟪로지코믹스⟫ (2011) 읽었다

버트런드 러셀의 일대기를 그리며 20세기 논리전쟁을 간략히 다룬 그래픽 노블이다.

러셀의 삶은 워낙에 유명한 에피소드가 많다. 화이트헤드나 비트겐슈타인 등과 사제관계로 엮였던 학문적 경력. 반전평화운동, 교육운동 등의 정치적 경력. 그리고 몇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은 가정사 등.

이 책을 학습만화로서 평가한다면 100점을 주긴 어렵다. 러셀의 삶은 충분히 드라마틱하게 그려냈지만, 수학과 논리학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이 작품은 삼중 액자 구성이다.

가장 큰 액자는 이 책의 저자와 작가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상황으로 시간적으로 ‘현재’이다. 좀 더 작은 액자는 러셀이 미국의 한 대학으로 강연을 하러 이동하면서, 참전 반대를 주장하는 대학생들과 맞닥뜨리게 되는 2차 대전 초기의 상황이다. 시간적으로 ‘과거’에 해당한다. 그리고 마지막 액자는 러셀의 강연 내용으로 러셀의 유년기와 강연을 할 당시까지의 내용이다. 시간적으로 ‘대과거’에 해당한다.

이 세 액자는 단순히 형식적인 구분을 넘어서, 내용적으로도 중첩되며 영향을 주고 받는다. 가장 작은 액자에서 그려지는 러셀의 회고는 두 번째 액자에서 참전 반대를 주장하는 대학생들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러셀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이 젊은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답을 던진다.

가장 큰 액자에서는 이 책의 저자들이 두 개의 작은 액자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한다. 저자들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Oresteia) 공연 연습과 연결지으며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 ⟨오레스테이아⟩를 작품에 삽입함으로써 러셀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을 피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러셀은 참전 혹은 반전에 대한 판단을 강연 청중에게 넘기며, 각자의 답을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 ⟨오레스테이아⟩의 결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를 죽여 복수한 오레스테이아는 아테네 법정에서 재판받지만, 죄가 있고 없음의 표결이 같은 수가 된다. 이에 판결을 맡은 아테나 여신은 ‘복수의 여신’들을 달래며, 앞으로 그들이 ‘자비의 여신’들로 숭배될 것이라 말하며 갈등을 봉합한다.

이러한 구도는 자연히 독자의 러셀에 대한 판단을 유도한다. 세계적인 논리학자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필가, 명민한 사회운동가로서 러셀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는 일생을 보다 명정하고 합리적인 것을 찾아 여행했다. 그러나 교육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가정도 화목하지 않았으며, 자식들도 정신병에 시달렸다. 그의 여행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으나, 이 책의 결론은 (비트겐슈타인을 변용하자면) 여행의 의미는 여행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여행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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