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공자가 어떻게 해서 2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도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지에 관한 책이다. 인간 공자를 학인, 교사, 철인, 개혁가 등으로 조망하고 있다. 공자 사후에 유가 후학들에 의해 덧입혀진 전설을 걷어내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유학은 국가고시를 준비하기 위한 학문이다. 공자 사후에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부분이 가미되어 마치 그것이 우선인양 본말이 전도되긴 했지만,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제후나 대신에게 중용된 뒤에 자신의 뜻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에 맞춰져있다.

공자는 제자들이 관직에 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공자 본인도 기회만 된다면 관직에 나가고자 했으나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두 번은 제후가 직접 공자를 읍에 봉하려 했으나 가신의 방해로 실패했고, 두 번은 가신이 궐기하여 공자를 초빙했으나 제자 자로의 반대로 공자가 단념했다.

공자가 관직에 올랐어도 성격상 크게 활약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후대 역사가들의 분석이다. 공자는 아부를 하지 않고 도리어 군주를 나무랐을 것이다. 공자가 직접 수레를 타고 제자를 이끌며 제후국을 순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자 자신은 원치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천상 학자였고 교육자였다. 공자의 제자별 맞춤식 교육은 익히 알려진 바다. 또한 그의 가르침을 받고 관직에 나간 제자들이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제자들 개인의 능력이기도 했겠지만, 경우에 따른 적절한 처사, 즉 예에 대하여공자에게 배운 덕분이었다.

H. G. 크릴은 공자가 사후에 성인으로 추앙되고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것에 대해서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의 사도들, 제자들의 영향이 컸지만 역시 인간 공자의 매력을 떼어놓고는 제자들의 사랑과 존경, 열의를 설명할 수 없다고 적었다.

정작 공자 자신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이름이 후대에 널리 알려져, 중국이라고 하는 거대 국가가 자국의 문화원을 ‘공자 학원’(마치 독일 문화원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이름을 따서 괴테 인스티투트Goethe-Institut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이라 부를 거라고는 예상 못했을 것이다.

노쇠한 공자가 몸져 누웠을 때, 제자들이 공자를 위해 대신의 예를 올리려고 했다. 평생 관직에 나가고자 했으나 이를 이루지 못해 뜻을 펼치지 못한 스승의 마음을 헤아렸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정신을 차린 공자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제자 중 하나가 머쓱해하며 자초지종을 알렸다.

공자는 고마워하기는 커녕 호통을 치며 제자들을 나무란다.

이렇게 대신의 예를 받는다고 해서 하늘이 모를 것 같으냐!

하늘은 알고 있다! 나를 욕보이는 것이냐!

거짓으로 대신의 예를 받는다고 내가 좋아할 것 같으냐,

제자들이자 친구인 그대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것이 더욱 좋지 않겠느냐….

공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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