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선택지를 손에 쥐고 이리 고민 저리 고민 저울질을 하던 나로서는 “이 길이 나의 길”이라며 무대포로 걸어가는 뭇 청춘들이 부럽기도 했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렇게 용감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실제로 찾아가 물어봤다. 소용없었다. 그건 ‘자기 자신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비전. 소명.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하지만, 진실로 자신의 소명을 찾기 위해 안락함을 희생하며 거친 광야로 길을 나서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저 비난받지 않을 이유와 적절한 조건에 타협하고 만다. 그런 삶을 낮추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개인적 안녕과 사회적 명망을 동시에 얻는 좋은 길일 수도 있다.

이신행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들 똑똑해서 실컷 머리로 재고 따지고 하다가 봄은 다 지나고 여름에야 씨를 뿌린다. 곧장 가을이 오고, 그다음은 겨울이다.” 또, 왕지혜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로는 다들 똑똑하고 훌륭하죠. 그런데 실천은요? 실제로는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아요.” 이제 ‘말 잔치’는 끝내고 움직일 때가 됐다.

엄기호 선배는 “대안은 실천하는 동안에만 보인다”고 했다. 행동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실수는 당연히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완전무결한 실천’을 연역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차라리 걸으면서 생각해야 한다. 인류는 직립보행을 시작하며 뇌가 커지고 덩달아 사고가 진화했다.

내가 ‘나의 길’을 자각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나를 둘러싼 기운이 조금씩 바뀌는 걸 느꼈다. 그저 아무 의미도 없이 나열되고 진행되던 세계가 일순간 나의 의미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걸 두고 비전, 소명이라고 하나 싶기까지 했다. 나는 여태 헛똑똑이로 살았구나 싶었다.

나 자신의 탁월함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인정하고 격려해 준 지인들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겁쟁이로 살았을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 응답하지 못하고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그러느라 정작 내면의 부름에는 응답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왜 하필 ‘나’이고, 또 왜 하필 ‘이 길’인가, 번민도 했다. 그러나 그에는 이유가 없다. 다만,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른 이는 몰라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그래, 우리는 남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끝끝내 ‘나’는 속일 수가 없다. 해서, 설령 가시밭길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발걸음 가벼웁게 걸어야 하는 것이다. 남에게 내보일 거창한 결과가 없어도 좋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 좋다. 이것이 자기 존재의 완성과 궁극적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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