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 잠시라도 깊게 의문이나 회의를 품지 않았던 과거의 어떤 일에 대하여 진지한 해명 ― 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 을 요구받는 일이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패착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어떻게 그런 결합이 가능했느냐”라고 내게 묻는 이가 있다면 “그이가 나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고 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합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냈느냐”라고 묻는다면 “부족한 결과이지만 성취가 있다면 모두 나 이외의 친구들 덕분이고 과오가 있었다면 모두 내 과오였다”라고 답할 것이다.

이런 나의 답변이 실증적이지 않기에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나는 상황을 그렇게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엄밀하게 분석하는 종류의 인간이 되지는 못한다.

고정된 포지션. 그 포지션에서 한 끝이라도 어긋나면 곧장 기회주의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살벌한 신상 논쟁. 철두철미한 자기비판, 자기반성. 날선 상호비판. 단선적 세계관으로의 폭력적 편입. 그와 나는 출발선부터가 한참이나 다르다.

덧붙이자면, 나는 윤리 판단에 있어 그 사람의 이념보다는 진정성(authenticity)을 중시하고 정치적으로는 왼쪽 날개냐 오른쪽 날개냐의 문제를 넘어 보다 높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얼마간 왼쪽 날개의 인텐시브 웨이트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 정도로 줄인다.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 더 할 말이 없다. 인간은 자기 동일성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세계와 투쟁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나와 달라지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다. 투쟁의 결과가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앞으로 살면서는 얼마나 더 많은 변명이 필요할까. 난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갈 거다. 그것도 끈덕지게!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pas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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