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빚어내는 예술가이다

졸업 하고 군입대를 하는 것은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선 썩 만족스러운 수순이다. 어쨌든 확실히 정리가 되는 것이니까. 객관적인 정리는 그렇게 되고, 나는 내 나름의 주관적 정리를 해야한다.

떠날 때가 되니 더 많이 주지 못한 것이, 나누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대학생활 내내 선후배, 동기, 스승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로부터 지적 자극, 삶의 방법, 호연지기, 용기, 지혜를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언제나 나는 성취, 성공보다 실수, 실패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나를 든든하게 받쳐준 이들 덕분이다.

꼭 대학에 왔어야 했을까? 지금이야 다른 선택도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진학을 결정할 당시에는 이런 질문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시간과 돈, 땀을 쏟아서 수험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가보자. 이 생각이 가장 컸다.

왜 꼭 연세대학교였나?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여느 대한민국 고3들처럼 손에 쥔 성적표를 들고 합격을 기원하며 원서를 넣었을 뿐이다. 입학하고서는 다른 궁리할 여지 없이, 어쨌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열심히 생활했다. 지난 4년 6개월의 시간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면, 그건 다 이 대학이라는 공간과 이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대학에 와서도 여전히 부모, 친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타지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신적·관계적 의존도는 자연스레 낮아졌지만, 여전히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도 무의식에 각인됐들 정서적 울타리 덕분에 자기파괴적 생활도 아주 짧게 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딘가 썼는데, 한 때는 ‘부모 때문에 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여전히 내가 지닌 문제의식 태반은 부모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긴하다. 대학에서의 공부, 생활은 이 문제의식을 보다 객관화, 일반화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노무현의 낙선과 이후 유시민의 개혁당 창당. 당시 넷키드였던 나는 예민하게 이 사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정서를 누구보다 공감해줄 것 같았던 아버지께 이메일로 당시 인터넷에 떠돌던 동영상과 글들을 모아서 보냈다. 돌아온 것은 전혀 예상밖의 호통이었다. “공부나 해라!”

지금은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나 서러워서 혼자 끅끅 울었다.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건강관리 다음에는 “우선 실력을 키워라!”는 질책을 가장 많이 받았다.

대학 입학 후에는 더 기고만장해서 대들었고,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조용히 지내긴 힘들었다. 그러고 서울에 돌아와도, 용돈은 제 날짜에 꼬박꼬박 입금해주셨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시다.

지금은 내가 먼저 내 앞가림에 신경쓰고, 내 삶에 책임을 지려고 하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격한 대립은 없다. 이제는 그냥 져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도 하고, 부모가 나를 품어주었던 것만큼 내가 보듬어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무래도 물질적 보답은 별로 자신이 없다. 그러나 부모가 몸소 가르쳐 준 바, 물질적인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사회계열로 입학해서 정치외교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정치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은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정치, 특히 한국에서의 정치는 소수를 위한 것이었고, 마치 다수를 위한 것인양 포장되어 왔을 뿐임을 안다. 이제 정치는 희망과 함께 말하기엔 어색한 것이 됐고, 오히려 인민의 절망과 더욱 친화력이 있다는 것도 안다.

아무튼 목적이 있었던 바, 현실 동학을 보는 비교정치 보다는 정치 규범을 정초하는 정치철학, 정치사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국제정치는 흥미도로 따지면 그만한 재미가 없으나 현실 영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됐다. 정치경제를 접한 이후론, 경제도 함께 공부하면 목적한 바에 더욱 부합하겠다 싶어 경제학 이중전공을 결심했다. 그 결과가 썩 개운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선생님들로부터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열심히 공부했노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서, 조심스럽다. (학기 중에 정말 많이 나돌아다녔다.) 대학에서의 공부가 삶에서, 현실에서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내 결론이다. 학문의 종속성과 식민지성, 보수성. 그럼에도 그 속에서 희망을 본다면, 역설일까? 지나친 낙관일까?

대학을 졸업하는 마당에, 베베 꼬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입학할 때처럼 냉소적인 채로 머물러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책상물림만 하지 않고 많이 부딪히고 깨지고, 험한 꼴도 봤지만, 덕분에 쉽게 접할 수 없는 속살들을 맛보았다. 더 많은 삶의 면면들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때론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이 훨씬 많았다. 물론 대다수는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배움을 구하는데 적극적이었던 덕에 더욱 많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위에 있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기운들. 정말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래, 이 사람들이 희망이다. 그리고 또 어디엔가에도 이만한 사람들이 꿋꿋이 제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그들의 걸음이 더디겠지만 온전하기를 바라며 소박한 기도를 품는다.

다른 삶은 가능하다는 자신감과 믿음, 몇 번의 실패에도 기어코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걸어가는 용기와 열정, 지속 가능성을 위한 상상력과 흔들리며 걷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반성. 삶의 실험, 삶의 시험은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기필코 ‘삶’으로 증명해내리라, 다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빚어내는 예술가이다. 나는 내가 선생(先生)들을 통해 배웠던 또 느꼈던 ‘희망’을 내 주위와 내 다음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나 역시 하나의 희망의 증거로서.

2 thoughts on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빚어내는 예술가이다

  1. cota

    삶의 다크포스..를 느껴봤다는건 큰 자신이지..수고했다 세희야.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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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飛정상

    수고했다. 그리고 축하해.내 졸업은 언제쯤이려나;; 내년에나 복학할 것 같은데,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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