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든 운동이든 공부든 간에 통달(通達)로의 첫걸음을 위해서는 ‘두려움’이라는 역치(閾値)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 맛을 들이면 한동안은 즐길 수 있다가도 어느 경지에 이르면 또다시 그 길을 막아서는 것이 생기는데 이것이 ‘지루함’이다. 기어이 이 단계를 극복하면 다음에는 ‘꺼드럭거리는 기운’이 사방으로 뻗친다. 권총 사격을 처음 배우고 뭐든지 쏴보고 싶었다던 리영희 선생의 소회(所懷)가 와닿는 부분이다.

나도 수영을 조금 익히고는 물이란 물은 다 뛰어들어서 헤엄질을 해보고 싶었고, 사진에 맛을 들이고는 만물을 나의 피사체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부린 적이 있었다. 물에 빠져 죽을 경험을 몇 번, 질리도록 찍어대도 ‘완전히 담아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몇 번, 자연스레 ‘겸손’해졌다. 수영과 사진에 대한 애착은 더욱 깊어졌다. 출전을 위한 수영이 아닌, 출품을 위한 사진이 아닌, 수영을 위한 수영과 사진을 위한 사진을 즐기게 되었다. 이제 여기에다 삶의 무게를 얹고 전부를 매달면 ‘모든 것을 위한’, ‘모든 것에 의한’ 수영 또는 사진이 될 것이다. 바로 여기가 프로 정신과 아마추어적 애호가 갈라지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SBS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를 보면, 먹물 좀 먹었답시고 목에 빳빳하게 힘주고 다니며 돈과 권력 앞에서는 절로 굽신대는 이들이 정말로 머리를 조아려야 할 분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말이 필요한 것은 총칼 앞에서 가장 무력하게 부러졌던 것이 펜대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총칼 앞에서 당당히 맞서왔던 것들은 마르고 거친 흙을 뒤집으며 땀으로 삶을 일구던 쟁기와 곡갱이였다.

개인적 삶의 완성을 우습게 생각하던, 거대 담론의 시대가 있었다. 해체와 해체가 거듭되는 신자유주의라는 초거대 담론이 세계를 지배하며 개인들을 불안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모든 잘못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으니,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그걸 사회에 요구하거나 하면 대번에 무능한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개인은 쉼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결국엔 제살 뜯어먹기일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생존’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때에 나는 맹랑하게도 달인(達人)이 될 것을 제안한다.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수양을 권한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느림’으로 제동을 걸고, 더 많은 물질이 아닌 고매한 ‘정신’을 좇으며,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몸 가꾸기가 아닌 나와 만물을 위한 ‘참살이’를 행하자. ‘나’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나와 사회, 나와 세계의 관계성 위에 자신의 삶을 올려놓자.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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