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그래도 또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써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찢었다가 그래도 또 모아대고 쓰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이 역사, 이것이 역사냐?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내 나라요, 네 역사며 내 역사니라. (이 책, 218쪽)

함석헌 선생은 ‘역사란 적극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씨알’(민족, 민중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이 부침하는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물이 들어차서 민족의 기상이 상승하는 시기와 썰물처럼 민중의 혼이 빠져나가는 그런 시기를 나누고 있다. 도저히 ‘과학’으론 설명되지 않는 그런 서술이다. 민족혼의 부침은 무엇을 지표로 알 수 있단 말인가? 함석헌 선생에게는 몇 가지 대당(對當)이 있다. 순서없이 생각나는대로 정리하면,

  1. 민족, 민중 고유의 것  vs.  사대주의, 유교정신
  2. 북벌, 만주지향, 호연지기  vs.  보수, 지나친 문편(文偏)
  3. 이상주의(義)  vs.  현실주의(利)

앞의 것이 좀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이며 고난의 역사를 걸어온 주체라 할 수 있다. 뒤의 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나 앞의 것이 제대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막아온 장애물이고 역사의 걸림돌이다. 함석헌 선생은 이 역시 ‘역사’의 일부로 본다. 고난의 역사를 위해 필연적으로 등장했던 ‘시험’으로 본다. 버리고 싶고, 없었으면 싶은 역사이지만 이 역시 하나의 등장인물로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참으로 대담한 해석이다. 이건 오히려 역사라기 보다는 하나의 신앙에 가깝다.

고작 이 책 하나를 읽은 내가 감히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선 선생의 생애를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겠고, 선생이 쓴 다른 글들도 찬찬히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다만, 이 책을 쓸 당시의 함석헌 선생의 처지나 시대적 배경,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읽는다면 민족주의에 대한 과도한 옹호로 수용될 여지가 클 것이라는 염려는 한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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