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인연 만큼이나 책과의 인연도 신비롭다. 친구의 부탁으로 함께 하게 된 작업실에서 만나게 된 책, 우연히 펼쳐보고 몇 구절 읽어보다가 눈에 박혀서 기어코 빌려와서 읽었다. 아마 이런 우연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읽을 기회는 영영 없었을지도 모른다.

히딩크와 한국의 인연, 네덜란드와 한국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물론 PSV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거뒀던 탓에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제의 받았겠지만, 한국에 대해서 어떠한 관심도 없던 그가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에 오르게 된 인연을 단순히 인과율로 풀어내기는 힘든 일이다.

상업적인 의도로 기획, 출판된 책이긴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 그리고 가까운 기억인 2002 월드컵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재밌는 책이다.

요한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사의를 표하고 현재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는 비어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언론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된다. 히딩크 감독 시절에도 오대영(5:0) 감독이라는 비난은 물론 그의 선수 선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를 공격했던 언론이 있었다. 그런 언론에 대해서 당당하게 행동하면서 오히려 그를 이용해서 팀 내부 단합을 다졌던 히딩크 감독의 노력함을 생각하면 본프레레 전 감독이 너무 유약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히딩크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축구 경기는 경기장 안과 밖으로 나뉜다. 상대팀에게서, 상대팀 선수에게서, 상대팀 감독에게서 우위를 장악하는 것은 물론 선수들로부터, 의료진으로부터, 축구협회로부터 주도권을 확대해가는 과정에서 히딩크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혈질이고 즉흥적이며 쇼맨쉽이 강한 히딩크 감독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단임할 것만 같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자신의 성격을 직설적으로 내보임으로서 팀의 활기를 북돋았다.

경기 운영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경기장 안에 공을 하나 더 차넣은 뒤에 퇴장당한 이야기, 터프한 플레이 스타일을 기르기 위해서 연습경기 심판을 보면서 파울을 불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스피디한 플레이를 위해 월드컵 전날 반드시 잔디의 상태를 점검한 이야기, 상대팀에 대해 정신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FIFA에서 정해준 연습시간을 어겨가면서 기선을 제압하던 이야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히딩크 감독 개인의 탁월함은 물론 탄탄했던 축구협회의 후방 지원에 감탄했다. 히딩크 감독의 성과는 전적으로 물질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2002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국가적 사명을 가지고 K리그도 쉬어가며 전세기도 줘가며 합숙 훈련도 불사하며 준비했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며 그 시절과 비슷한 수준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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