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인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한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많은 부분 폭력적(은유로서의 폭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일본인들은 모두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어’라는 일반론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례, 즉 ‘그렇지 않은 일본인 한 명’만 데려오면 된다. 만약 그 반례를 통해서 그 일반론이 전면 부정되고 의미를 상실했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인론에 대한 언급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일본인 다수’가 존재하더라도 ‘일본인들의 혼네와 다테마에’에 대한 통찰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논의, 일본인론에 대한 언급은 계속될 필요가 있다.

조건에의 적응이 자아 형성의 주요한 과정 중의 하나라는 추상적인 주장에 동의한다면, 우선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조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건이라함은 첫째, 자연과 풍토. 둘째, 고유의 역사적 맥락이다.

첫 번째 조건은 일본의 자연과 풍토가 고유한 일본 국민성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생물학적인 논의를 제외하고 이 주장을 좀 더 이해하는 시도를 해본다면, 일본의 지형, 지질, 기후 등이 독특한 일본의 국민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1984년 시가 시게타카의 ⟪일본풍경론⟫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쇼와 초기의 와쓰지 데쓰로의 ⟪풍토⟫(1935)까지 이어졌지만 숱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자연적 환경보다 인간 사회적 역사적인 조건의 분석이 더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고유의 역사적 맥락이다. 일본인만이 가지는 일본의 역사, 그 역사적 체험이 전승되어 일본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점이다. 이 조건의 연구는 역사 시기의 구분과 더불어 그 특정한 구분 단계에서 형성되고 고정되어, 사회심리학적으로 영향을 준 그 중핵의 전통을 찾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원시시대, 신화, 고대, 중세, 근세, 근대로의 소급을 통해 진행된 여러 학설들이 있다. 무엇보다 메이지유신이라는 역사적인 대변화의 결과에 주목하는 근대로의 소급을 통한 연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확립된 근대 천황제와 새로운 근대 국가를 위해 창조되고 강요되었던 다양한 전통들은 분명 현대 일본인들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들이 될 것이다.

구조기능주의라는 매력적이지만 꽤나 위험한 사상의 튼튼한 단초가 되었던 탈콧 파슨즈(Talcott Parsons)의 단위 행위(unit act)를 빌려서 설명을 하겠다. 기본적인 행위 이론 모델에서는 하나의 행위를, 행위자의 욕구(desire, effort 또는 libido)가 있고 행위를 통해 얻으려는 이루려는 결과(goal 또는 ends)로 나눈다. 이 desire와 goal 사이에 있는 것이 means, 즉 행위 수단이다. 합리적인 행위 이론은 행위자는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행위 수단을 선택한다는 설명이고 낭만적인 행위 이론은 고유한 정신의 발현으로 수단을 선택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론들을 극복하고 탈콧 파슨즈가 주장했던 것이 내면화되고 사회화된 규범(norms)이 행위 수단의 선택을 결정짓는다는 이론이다. 이 규범은 사회제도를 통해서 만들어져서 개인에게 구조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공부해서 현대 일본인을 설명한다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나는 ‘현재까지의 사회심리학 · 문화인류학적 연구에서 어떤 국민이나 그 민족 구성원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최빈적(最頻的) 퍼스낼리티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 주장에 따라 제시된 ‘일본인은 대인관계에 민감하고 자기 주장보다도 상대방 본위의 태도를 취하기 쉽다’는 내용의 퍼스날리티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한다.

자아는 타자를 통해서 규정된다. 오랫동안 유럽이라는 대륙을 유럽으로 만들어줬던 것은 非유럽, 즉 동양이라는 대상을 통해서였다. 맥락은 다르지만 비유를 통해 이해를 돕자면, 외부의 적(실재적이든 가상적이든)을 통해 내부의 평화를 공고히 하는 셈이다. 이베리아 반도로 북상하는 무슬림들의 위협에 아라곤 왕조와 카스티야 왕조는 결탁했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콘스탄티노풀 함락이 이탈리아 도시들로 하여금 유례없는 합의에 의한 평화를 가능하게 했다. 모든 인간들은 사회적 관계에 끈끈하게 결속되어있고, 이 관계를 벗어나서는 나는 나도 아니고 너는 너도 아니게 된다. ‘왕은 본디 왕이기 때문에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이 있어서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이 행위함에 있어서 타자를 고려하는 것(상상으로서 타자의 입장이 되어보기)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독 일본인이 ‘자의식의 과잉’, ‘자국 의식의 과잉’으로 설명되는 것의 이유는 무엇일까. 자국민 스스로 자국민의 국민성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일본인의 이런 퍼스낼리티에 관한 설명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만약 이 퍼스낼리티를 ‘타인에게 맞추기’로 이해한다면 섬이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사회를 구성하고 규범을 만들면서 그 규범에 자연스럽게 ‘함께 살기 위해서 타인에게 맞춰주기’가 녹아들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오래부터 내려온 일본의 고유한 신화나 정신, 전통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인론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 내가 생각하는 일본인의 퍼스낼리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서 서술하였다. 우리가 일본인론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함에 있어서 주의해야할 것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대상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충분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현재의 상황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Posted by:박세희 (Park Sehee)

성장의 기쁨, 나눔의 즐거움. hubby, daddy of two sons, lawyer, ever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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