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생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종교를 믿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배척한다. 사이비(似而非),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거나 아니라는 뜻이다. 또 이단이라는 것도 있다. 이단(異端), 원류는 같을지 모르나 그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기독교나 불교 등의 종교와 사이비 종교의 차이점을 무엇일까. 역시 사이비 종교는 강압적인 금품수수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신도들을 맹신케 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들도 사이비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종교라는 것이 믿음을 부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허구가 되어버리듯 사이비 역시 믿음으로는 참(眞)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서있는 아저씨 그리고 일본 도쿄 신주쿠 역앞 횡단보도에서 ‘그리스도를 믿읍시다’라고 외치며 나를 황당하게 했던 아저씨. 그 두 사람이 대구 칠성시장 앞에서 천리교를 믿자며 열심히 떠들고 돌아다니시는 할머니와 대체 어디가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다수결로서 사실의 진위여부를 알 수 없듯이, 기독교나 천주교의 신도가 다수라고 해서 또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참(眞)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기독교재단의 학교였다. 따라서 채플시간도 있었고 종교시간도 있었다.

하루는 영어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세계에 널리 퍼져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인이 다수이며 기독교를 믿는 사람중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며 기독교를 믿으라고 학생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나는 어떻게 종교가 그런 식으로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고, 그 선생님께서는 어떤 것이 참眞인지는 누구도 모르니까 다수가 고개돌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나마 맞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학생들 앞이고 설득하려는 목적이었으므로 그냥 이해하지만 교사이며 대학에 시간강사로 일하는 살아있는 지성이라는 분이 이런 식의 논리를 펼쳤던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나는 국사선생님과 종교선생님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한동안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 두 분의 행동자체로만 본다면 당장이라도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게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근본주의(fundamentalism)를 무서워하고 또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아닐까 싶다. 십자군과 걸프戰,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戰―혹자는 2차 걸프戰이라고 한다―만 봐도 그렇게 생각된다.

클로네이드와 라엘리안 무브먼트. 그들의 교리는 실로 놀랍다. 야훼는 외계인이고 예수 또한 외계인이며 예수는 부활한게 아니라 복제되었던 것이라는, 이를테면 성서에 대한 해석을 달리해버린 것이다. 사료를 두고 사관을 달리하는 역사학자들이 있다. 나도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이런 해석은 학문에 있어서 서로의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와는 달리 아주 위험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사회과학적으로 과학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라고 주장하는 이 단체는 상당히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늘 종교는 타종교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배운다. 그렇지만 어떤 종교는 타종교를 배척함으로써만 성립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 모든 기독교인이 타종교와 그 신도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이건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사이비가 아닌가하는 종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경우, 참으로 나는 난처하다. 저 사람들을 관용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저 종교를 사이비라고 생각하는 나는 역시 정형화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종교문제라는 것은 인간이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이다. 이렇게 몇자 끄적거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또 그렇게 될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의견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나는 진화론을 믿었고 교과서에 있으므로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역시 진화론을 믿고 있기는 하다. 진화라는 발상자체가 참으로 독특하고 흥미를 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와서 마음 속 깊이 창조론을 믿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이라는 책도 빌려주었다.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창조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창조라는 것이 신이 인간을 손으로 빚으셨다라는 것인데, 그러면 신은 어디있으며 뭘로 빚었으며… 호기심 많은 인간들은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 아닌가. 非기독교인들이 창조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반박하려 한다는 것은 창조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우주개발을 해서 얻을 수 있거나 얻으리라 예상되는 경제적 효용가치들을 내세워서 우주개발의 필요성을 설명하려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했다. 단순히 알고 싶어서 실험을 한다는 것이 가장 합당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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